현승은(31) 한의사는 술을 잘 못한다고 했다. 우연인지 그간 우리술이 좋아서 이와 밀접한 관계인 사람을 여럿 만났지만, 그들 중 대주가(大酒家)는 보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술을 잘 마시는 건 많이 마시는 게 아니라 즐겁게 마시는 것임을 모를 리 없으니 말이다.
현씨는 숙취 때문에,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싫어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언젠가 페트병으로 한 병을 다 마시고서도 다음 날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그만 우리술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현승은 한의사와 술의 만남은 어쩜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선 한의학과 술의 상관관계에 대해 여러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다. 달리 말해, 실제 술을 이용한 한방의학이 응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현씨는 2004년 원광대학교 한의과를 졸업한 후 곧바로 전북 남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다. 한의학을 계속 공부하다 보니 자연 옛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관심은 술에까지 이르게 됐다.
“공중보건의로 근무할 때 전주에 갈 일이 있었어요. 그때의 저는 우리술에 관심이 아주 많을 때였죠. 거기서 풍남동 전주전통술박물관을 찾아 들어갔는데, 바로 결심했어요. 수강하기로.”
분명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현씨는 앎에 대한 갈증 때문이지 힘든 줄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가양주반과 전통주연구반에 이어 전문가반까지 수료했다. 이후 2007년 서울로 올라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종로구 창신동 동진한의원에서 근무 중이다.
현씨는 몇 년 전 한 행사 때문에 전주에 갔다가, 전날 밤 모임에서 우리술이 담긴 페트병 하나를 모두 마신 적이 있다고 했다. 과음 후 다음 날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통과 구토 증상을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말짱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날이 새도록 얘기가 끊이지 않았고, 술도 취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때 일을 계기로 우리술의 매력에 더욱 빠지게 된 그다.
처음 빚은 술도 현씨에겐 잊지 못할 추억이다. ‘향온주(香醞酒)’였다. 여건상 일주일에 한 번 수강을 하는 탓에 만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나중엔 아예 관사(官舍)에다 술 도구를 하나둘 갖춰놓고 밤늦도록 술 만들기에 집중했다. 완성 후에는 느껴지는 달고 향긋한 냄새에 적잖이 기뻤다. 그는 “품평회 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을 정도”라고 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그렇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술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항상 그런 생각을 하죠. 전 지금도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제가 틈틈이 빚은 술을 가지고 나가요. 그러곤 맛보게 하죠. 모두 좋아해요. 그러다보면 확신도 생겨요. 평소 흔히 접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경험해보면 많은 사람이 저처럼 우리술의 매력에 빠질 겁니다.”
현씨의 꿈은 수원에 한의원을 하나 차리는 것이다. 말이 꿈이지 현실가능성이 큰 목표다. 그는 현재 수원새날의료생협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다. 이곳 조합원들이 출자해 한의원을 설립하고자 지난 4월에는 창립총회까지 열었다. 이날에도 그가 준비해간 ‘과하주(過夏酒)’는 분위기를 띄우는데 단단히 한몫 했다.
현씨가 만들고 싶은 한의원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면서도 좋은 술 문화, 좋은 차(茶) 문화를 보급하고, 때로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교육도 하는 한의원을 꿈꾼다. 기회가 된다면 수강생들을 모아 술 강의도 하고, 내친김에 발효실도 갖출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득 술 냄새 나는 한의원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밀려 있는 환자들 때문에 오래 앉아 있기가 미안했다. 서둘러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현씨가 한 마디 했다. “술지게미는 타박상에 좋아요. 적당량을 아픈 부위에 대고 있으면 돼요. 또 어혈(瘀血)을 풀어주는 데도 효과가 있죠.”
그래도 한의원에 왔는데 민간요법 하나는 얻어가야 할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친절한 현승은씨’가 눈치 채고 한 가지 알려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