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주 대표는 혜안(慧眼)이 있다. 어느 정도는 타고났다. 행동도 거침없다. 거기에 신념까지 더해지니 못할 게 없다. 그렇게 35년의 주류인생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 그는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그 트렌드는 또 다른 유행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의 머리와 몸짓은 늘 바쁘다.
인내 없으면 人材 길러내지 못해
약 35년을 술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매체와 숱한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오늘은 잠시 대표님의 뒤를 돌아보죠. 숨 가쁘게 지내온 날들,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세월이 유수(流水) 같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볼 땐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앞만 보고 뛰다 보니 벌써 35년이 흘렀습니다. 요즘엔 ‘언제 내려가게 될까’ 하는 걱정도 생겼어요(웃음). 하여간 스스로 평가해보자면 지금껏 잘해온 듯싶습니다. 뭐 그간 부침도, 굴곡도 있었지만 내가 걸어온 길, 후회 없이 잘한 것 같아요. 소신껏 잘 살아왔다는 생각을 해요.
신념이 매우 두터운 것 같고 추진력 또한 강할 것 같습니다.
우선 부지런하지 않고는 성에 차지 않는 성격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것에 몰입하는 스타일이죠. 난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추진력이 강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아마도 남들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 되게 만들어서 그런 듯해요. 사실 제가 볼 땐 운이 좋았던 것 같고, 남이 보지 못하는 인사이트(insight), 그러니까 혜안(慧眼)도 좀 있지 않았나 해요.
그런 성격에 흠도 있나요?
제가 정(情)과 의리에 약해요. 사람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죠. 좋은 점일 수도 있는데 때로 손해를 많이 보는 편입니다. 경영은 냉철하면서도 논리적인 스타일과 감성적인 스타일이 있는데, 제 경우는 후자에 속해요. 예를 들어, 부족한 직원이 있다면 그래도 내가 키워서 데리고 가야 한다는 쪽이죠. 비즈니스 측면에서 단기적으로 보면 단점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장점이에요. 처음 날 때부터 타고난 재주꾼은 없어요, 길러지는 거지. 우리 회사도 처음부터 인재인 직원은 없었어요. 회사가 꾸준히 투자하고 교육하고 경험 쌓게 해주면 어느새 인재가 돼 있더라고요. 저 역시 마찬가지죠. 처음 사회생활을 할 때 많이 잘못했지만 회사가 그 실수를 수용해줬기 때문에 지금까지 온 거예요. 저는 실수나 실패를 용납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야 추진력 있고 혁신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잘 커가는 회사가 되는 거죠. 그렇게만 된다면 발전 속도가 빠르고 타 회사보다 훨씬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봐요.
그래도 그런 것들이 다 회사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라고 생각되는데요.
제가 정이 많고 감성 경영을 하는 건 맞는데 저도 사업가이니 계산적입니다. 내 직원이 부족하면 그 자리를 채워줄 인재는 많습니다. 이게 단기적으론 맞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땐 그렇지 않을 수 있어요. 재능이 우수한 사람만이 충성심이 뛰어난 건 아닙니다. 재능이 좀 부족해도 충성심 넘치는 직원을 키워주면 정말 큰 인재가 돼요. 그런 직원들에겐 회사가 좀 기다려주는 게 맞아요. ‘콩글리시’지만 ‘인터널 스몰 프러블럼, 엑스터널 하이 리스크(internal small problem, external high risk)’라는 말이 있어요. 예를 들어보죠. 우리 조직에 하나의 포지션이 새로 생겼어요. 그 자리에 내부 사람을 쓰려고 보니 20% 정도 부족한 듯해요. 그러면 헤드헌터를 통해 그에 맞는 인재를 외부에서 데려올 것인지 고민하게 되죠. 이런 경우 저는 내부 사람을 중용(重用)해요. 그 사람을 선택하면 문제가 생겨도 그리 크지 않아요. 제가 그 직원을 잘 알기 때문에 실수를 해도 저뿐만 아니라 중역들이 도와줄 수 있죠. 약점이 뭐고 단점이 뭔지 잘 알기 때문에 그 친구가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어요. 쉽게 말해 사고를 쳐봤자 작은 문제만 발생해요. 반면 외부에서 들여오는 인재는 재능적인 부분은 검증됐을지 몰라도 우리가 그를 잘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터지면 회사가 흔들릴 정도의 큰 위험일 수 있죠. 성품이나 조직에 녹아들어가는 융화도 역시 잘 모르고요. 한 마디로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해요. 제 경험상 보면 여태 그래 왔어요. 제 이야기의 핵심은 인내를 갖지 못하면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 회사에선 지금 엄청난 인재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제가 봤을 때 앞으로 5년 뒤, 혹은 10년 뒤에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 제의가 엄청나게 들어올 겁니다.
국내 위스키 문화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라 생각돼요.
현재 위스키 소비가 10년째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몇 가지 있어요. 첫째는 ‘접대비 실명제’라든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등이죠. 그다음으로 위스키 제조사들의 문제도 있다고 봐요. 저마다 이익목표에 맞춰 판매량에만 신경 쓰다 보니 광고를 등한시하게 되죠. 최근 들어 위스키 광고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광고는 특정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필요하죠. 위스키는 주당들에겐 일종의 로망입니다. 고급술로 인식하며 “언젠가 마셔봐야지” 하는 기대를 갖게 하죠. 그런데 광고가 사라지니 소비자들은 위스키를 더 이상 고급술로 인식하지 않아요. 별로라고 생각하는 거죠. 꾸준히 새로운 소비자들을 형성하고 또 새로운 위스키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새로운 음용법이나 사용처가 생기지 않고 소비가 떨어지기만 하죠. 제가 봤을 때 당분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겁니다. 무엇보다 최근 국내 위스키 산업에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힌 건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입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소비가 꽤 줄어들었죠. 엄청난 데미지를 입은 겁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국내 위스키 산업이 피폐해져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길은 있다고 봅니다. 국내 위스키 시장은 다시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일본을 봐도 그렇습니다. 이 나라도 약 26년간 위스키 시장이 위축되다가 2011년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했죠. ‘하이볼’이라는 음용문화가 보급되면서 위스키를 식사 쪽으로 옮겨온 것이 컸습니다. 저 역시 국내 시장도 위스키가 식사 문화로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프리미엄 소주 개발을 준비하셨군요.
맞습니다. 국내 위스키 회사들도 이제 소주 시장으로 들어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까닭에 저희가 먼저 프리미엄 소주 시장으로 들어가 보겠다는 겁니다. 이미 제품 개발은 다 돼 있는 상태예요. 이제 소비자 조사를 거쳐 시제품을 생산한 후 테스트 마케팅을 해보려고 해요. 그 시기를 올 하반기로 보고 있는데, 그럼 그 결과를 가지고 다시 정리해 내년 초쯤 대량생산할 계획입니다. 회사 입장에선 워낙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러워요. 위스키라면 많은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겠지만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단단하게 준비해보고 싶습니다. 프리미엄 소주지만 우리도 최대한 이익을 내고 소비자도 가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포인트가 어딘지 알아봐야죠. 고급 음식점이나 소매점 등 우리가 목표로 하는 곳에 몇만 상자를 투입해 팔아보고, 어떤 반응이 있는지 체킹해서 그걸 가지고 다시 브랜드 론칭을 하는 겁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일단 해보려고요. 굉장히 유니크할 겁니다. 사실, 프리미엄 소주는 15년 전부터 쭉 생각해온 아이템이었어요. 제겐 한국 소주 시장에 침투해 전무후무한 혁신을 이뤄내자는 야망이 있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 술의 대명사는 소주입니다. 소주는 우리 주류문화의 정신이라고 보거든요. 그 시장에 뛰어들어 성공해야 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