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술, 사람들

“가양주는 하나의 문화로 접근하고 이해돼야” ㈔한국가양주협회 류인수 회장

4개월 만에 認可 ‘초고속’… 1가정 1가양주 빚기 목적… ‘술독닷컴’ 운영하며 고문헌 샅샅이 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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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구
herophone@naver.com
2009년 06월 22일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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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ltimes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 가운데 5편과 20편은 ‘우리 술’에 대한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담고 있다. 청주·소주·탁주 등의 소재가 등장인물들의 재미난 이야기 전개와 맞물려 꽤나 흥미롭게 만든다.

허 화백은 내용 속 취재일기를 통해 몇몇 젊은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그중 한 명이 ‘술독닷컴(www.suldoc.com)’ 운영자 류인수(32) 씨다. 취재를 위해 직접 전통주 만들기 시연을 해보였고, 작품 속에 나오는 술 박물관도 소개해줬으며, 갖고 있는 지식을 모두 털어내 알려줬으니 고마워도 단단히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그런 그가 협회를 하나 설립했다. 사단법인 한국가양주협회다. 인가(認可) 받기까지 4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만큼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1가구 1가양주 빚기’, ‘잃어버린 우리 술 복원’ 등의 분명한 목적으로 설립한 협회인 만큼, 그의 행보에 모두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요즈음이다.

류인수 회장. 젊디젊은 나이에 가양주협회를 이끌고 있는 사람. 그는 지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일에 ‘사명감’까지 더해졌으니 어깨가 조금 무거워졌을 뿐, 항상 즐겁다. 그게 곧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류 회장의 이력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는 놀랍기까지 하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포지션은 센터포드. 같은 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이영표(32·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김남일(32·일본 빗셀 고베)과 한 시절을 보냈다. 고3 때 무릎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TV 브라운관을 통해 비춰진 그의 모습에 환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운동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했기 때문에 공부는 사실 자신 없었다. 그래도 대학에 가기 원했고, 술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비를 벌었다. 그때 술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서울 압구정동의 꽤 큰 바(bar)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대신 대학에 대한 미련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편하게 책상의자에 앉아서 하는 공부가 아닌, 술을 파는 현장에서 바 스푼(barspoon)으로 머리를 맞아가며 익힌 지식과 상식들이라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

어느 날, 후배들에게 청소를 시키곤 술 진열장을 바라봤다. 우리 술만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됐다. 그때까지 전통주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고, 오직 와인과 위스키 등 수입주류만 공부해왔던 그였다. 묘한 관심이 생겼다. 배울 용기도 덩달아 생겼다. 결국 배우기로 했다.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웠다. 그러나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좀 자신 있다 싶으면 맛이 시었고, 불안하다 싶으면 여지없이 망쳤다.

그는 고(古)문헌을 샅샅이 뒤졌다. 해서, 알게 됐다. 전통주마다 제조법이 다 다름을. 내친김에 그간 모은 자료들과 직접 제조하며 찍어댄 사진들을 차곡차곡 데이터베이스화(化) 했다.

日 나리타공항서 강제 퇴거

생각해보니 우리 술과 더불어 일본 술을 아는 것도 큰 도움이 되겠다고 느꼈다. 일본유학을 결심했다. 1년여의 시간을 일본어 공부에 매달렸고, 드디어 일본 땅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때 나이 27세. 일본 나리타(成田)공항에서 입국수속을 하던 도중 그는 강제 퇴거조치를 당한다. 당시 한·일 관계는 최악이었고, “1월에 입학하기로 돼 있는데 왜 한 달 빨리 왔느냐”는 말 같지도 않은 트집에 철창신세를 지고 난 다음에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분을 삭이며 다시 준비했지만, 같은 공항에서 그는 1차 퇴거의 이유로 또 다시 강제 퇴거조치 당한다. 그땐 철창 안에서 많이도 울었다.

“난, 정말 뭘 해도 안 되는구나.” 오래 전 축구선수 생명이 끝났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술 인생도 처음부터 꼬였다. 5개월을 폐인생활로 지냈다. 그러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 차리게 됐다.

그 때까지 자신이 직접 운영하던 ‘술독닷컴(www.suldoc.com)’에 그간 모아놓은 자료를 모두 올리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분량 때문에 올리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러는 동안 그는 원래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가 막 시작됐을 무렵, 현실은 무시할 수 없는 벽임을 실감했다. 그간 모아놓은 돈은 사이트 운영에 거의 쏟아 부었고, 결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스스로의 답을 얻기 위해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고, 그는 그곳에서 “나도 남잔데, 끝장을 한 번 보자”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어왔다. 그렇게 봄을 맞으며 사단법인을 만들 준비를 했다.

누구에게나 맘먹은 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 법. 농림수산식품부를 찾았지만 “가양주협회를 만들어 우리의 옛 술 문화를 되살리겠다”는 그의 포부는 여러 목소리에 묻혔고, 당시 인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소믈리에협회와 같이 활동하는 건 어떻겠냐는 충고까지 들었다.

“외국 술 전문가도 인정해주는 마당에 우리 술 전문가를 외면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이 한 마디에 관련 부서 담당자도 수긍하기 시작했다. 류인수 회장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젊음’이라는 무기가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가양주 업계에도 젊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농림부 담당자가 ‘젊은 사람이 뭔가 한 번 이뤄보라’는 뜻을 전해준 게 아니겠냐는 것이다.

10월부터 서류심사가 시작됐고, 드디어 올해 1월 정식으로 사단법인을 인가받기에 이른다. 4개월도 채 되지 않아 이뤄낸 것이라 더욱 값지고 소중하다.

“가양주 문화는 단순히 집에서 술을 빚어 마시자는 문화가 아녜요.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 집에서 내가 만든 술로 이웃과의 정을 나누자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가양주는 술로만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문화로 접근하고 이해돼야 합니다.”

그가 말한 나와 내 가족을 위한다는 말은 내 입맛과 내 몸에 맞는 술을 빚을 수 있고, 또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력에 맞게 각종 약재를 집어넣어 약주(藥酒)로도 만들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나와 내 가족이 마시는 술인 만큼 우리 땅에서 나는 농산물로 만들 테니 국산 농산물 소비 촉진에도 적잖은 기여를 할 것으로 내다봤다.

9月 ‘전통주 교육센터’ 문 열어

지금 가양주협회는 한창 바쁠 시기다. 당장 7월엔 서울 방배동에 있는 전통주 교육센터가 문을 연다.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이 교육센터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또한 실용적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먼저 일반인은 명주반, 명인반, 주인반(명주와 명인을 합한 이름) 등의 학과에서 가양주를 배울 수 있다. 평일 주 2회씩 총 24회, 즉 3개월 코스로 커리큘럼이 짜 있다. 본격적인 수강은 9월부터. 전문가반은 주 1회씩 6개월 코스다. 주로 술과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거나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라 농민주 신청 절차나 주세법 등 실질적으로 술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준다.

강사 선택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일반인반의 강사들은 가양주 쪽에서 꽤 이름난 사람들로 포진돼 있고, 전문가반은 과목에 맞게 관련 전문가들을 수시로 초빙할 계획이다.

가양주협회에서는 인증사업도 연구·계획 중이다.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아 마땅한 제품(名酒)과 최고의 술을 빚는 사람(名人)에게 각각 가양주협회만의 고유 인증을 달아주려는 것이다.

“정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를 정도로 뛰어다녔어요. 출발선은 지났으니 이제부터 또 열심히 뛰어야 해요. 그런데 조금 섭섭한 점도 없지 않아요. 가양주협회 설립은 관련 업계의 염원이었는데,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조금 더 열심히 뛰면 들을 수 있을까요?(웃음)”

류인수 회장은 협회의 설립을 통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다. ‘참여’를 독려하려는 것이다. 우리술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만나면 ‘고맙습니다’는 말 대신 ‘당신에게 빚을 졌습니다’라고 말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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