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고난 소안(笑顔)이 아님에도 항상 웃는 낯이다. 어쩌면 ‘웃음의 묘약(妙藥)’인 와인 덕에 저절로 묻어나오는 지도 모르겠다.
더 와인아카데미 서한정 원장은 언제나 와인 알리기에 열심이다. 일생을 와인과 함께했고, 또 앞으로도 변치 않을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의 이름 앞엔 항상 ‘1세대 소믈리에(Sommelier)’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와인이 술인지 약인지 구분도 못하던 시절인 1970년, 그는 호텔과 인연을 맺었다. 4년 후인 1974년, 호텔 엠베서더에서 바텐더로 일하기 시작하며 와인과 조우한다. 당시 그곳의 바텐더는 지금의 소믈리에 역할도 함께했다.
그 시절, 와인은 서한정 원장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손님 앞에서 실수 연발, 이어지는 선배의 질책이 연일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포기가 싫었다. 어차피 맡겨진 일, 도전해보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런 마음은 와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닥치는 대로 관련 책을 사 모았다. 물론, 국내 서적은 전무했다. 온통 영어와 일어로 가득한 ‘교과서’를 정복하고자 학원과 호텔을 오가며 2년을 보냈다. 1976년 프라자 호텔로 옮기면서 마침내 국내에선 처음으로 소믈리에라는 직함을 달았다.
1984년에는 서울신라호텔로 자리 이동을 했고, 그곳에서 2001년까지 보냈다. 1990년엔 한국소믈리에협회를 설립해 2001년까지 초대 회장직을 맡았다. 현재는 명예회장으로 길고 긴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재작년엔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갑연이 열려, 그의 30년 와인 인생을 반추(反芻)해보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당연히, 어쩌면 너무도 다행스럽게, 서한정 원장은 아직 현역에서 은퇴하지 않았다. 2001년 5월부터 와인 전문학원 ‘더 와인아카데미’ 원장으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러니까, 그에게 와인 비즈니스는 언제나 ‘진행형’이다.
와인은 정말 어려운 술일까? 이에 대해 서한정 원장은 명쾌한 답을 들려준다.
“저는 30년 넘도록 와인과 함께했지만 지금도 집에선 도자기 같은 잔에다 그냥 마십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마시기도 하고 야외에 나갈 땐 종이컵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와인은 오히려 격식이 없는 술입니다. 고급 식당에서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선택할 때나 어느 정도의 격식이 필요하지, 그 외의 경우엔 언제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 바로 와인입니다.”
서한정 원장은 와인 수입이 자유화되기 이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호텔의 면세(免稅) 제품들로 인해 와인이 지금까지 비싼 고급술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즈음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품으로 등장한 와인들 역시 비싸고 품격 높은 술의 상징으로 비쳐진 점도 한몫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현재의 음주 문화는 변화하고 있고, 그 중심에 와인이 있다.
서한정 원장은 “어떤 문화든 바뀌게 되며, 이에 편승해야 발전이 있다”고 믿는다. 달리 말해 국내 음주 풍토가 막걸리를 마시던 시절에서 소주, 맥주, 폭탄주로 진화했고, 이젠 와인이 대체 세력으로 꿈틀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젊은 층이 주도하는 저도주(低度酒) 중심의 음주 트렌드와도 딱 맞아떨어진다.
더구나 글로벌 시대에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와인은 반드시 가까이 해야 할 문화라고 그는 주장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나, 반대로 외국을 방문할 때 그들 식의 반주(飯酒)에 길들여져 있지 않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내친김에 초보자임을 자처하며 어울리는 와인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단번에 “달콤한 걸 좋아해요, 떫은맛을 좋아해요? 혹은 담백한 게 좋아요?”라고 묻는다. 달콤한 맛이 좋다고 하자, 바로 “독일 모젤(Mosel) 지방이나 이탈리아 모스카토(Moscato) 품종의 와인을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와인을 처음 접한다면 무조건 마셔보고 가까운 와인숍을 찾아야 하며, 주위의 추천을 받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코 어려운 건 아니잖아요.”
서한정 원장은 내 생활 범위에 가까이 있는 와인숍을 찾아, 내가 좋아할 만한 와인을 고른 후 가능한 많이 마셔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내 특성에 맞는 와인을 추천받는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다.
“와인, 너무 어렵게 생각마세요”
“와인은 모든 사람을 다 수용할 수 있습니다. 세계 어디를 봐도 일반 서민부터 상류층까지 모두 즐길 수 있죠. 어느 술이 그렇습니까. 와인이기에 가능한 겁니다. 다만, 품질과 가격에서 차이가 날 뿐, 자기 개성대로 마시면 그 뿐입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에게선 향기가 난다. 신선한 과일 향에 타닌의 느낌이 더해져 그만의 달콤함을 풍긴다. 중독성 강한 남성 향수보다 은은한 그의 향이 더 반갑게 느껴지는 건, 이 땅의 남성들에겐 무척이나 부러운 일일 따름이다.
◇서한정 원장이 추천하는 와인 ==========
〈초보에게 좋은 와인〉
①‘로제타 2003’ 레드와인·이탈리아·750㎖·8% 미만 ②‘모스카토 다스티’ 화이트와인·이탈리아 피에몬테·750㎖·5.5% ③‘발레벨보 모스카토 스푸만테’ 스파클링 화이트와인·이탈리아·750㎖·8% 미만 ④‘빌라 M 모스카텔’ 화이트와인·이탈리아 피에몬테·750㎖·8% 미만
〈CEO·비즈니스맨을 위한 와인〉
①‘루이 라뚜르 샤블리’ 화이트와인·프랑스 부르고뉴·750㎖·12~14% ②‘메독 바롱 앙리’ 레드와인·프랑스 보르도·750㎖·10~12% ③‘켄달잭슨 진판델’ 레드와인·미국 캘리포니아·750㎖·12~14% ④‘샤토 린치 바쥐’ 레드와인·프랑스·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