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곤지암리조트 식음조리그룹의 김희전(31) 소믈리에를 만난 건 지난달 20일 아침 8시를 조금 넘기고서다. 리조트 내 와인동굴 레스토랑 ‘라그로타(Lagrotta)’ 오픈(9월 초)이 며칠 남지 않아 짬을 낼 수 있는 건 그때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 레스토랑의 소믈리에다.
말과 행동이 무척 씩씩한 그는 인부들과 함께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거의 노동에 가까운 작업을 한다며 웃었다. 주말도 평일과 같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추레한 모습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라며 또 배시시 웃었다.
“요즘은 이런 소믈리에 의상을 차려입을 일이 없어요. 그래도 인터뷰니 모처럼 깨끗하게 차려입고 나왔지요.”
김희전씨는 인터뷰를 위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메이크업과 헤어 등에 꽤 신경을 썼다고 했다. 이날에는 한 시간 반 정도 사진촬영만 했고, 본격적인 인터뷰는 그의 바쁜 일상 탓에 일과가 끝나는 밤 10시쯤부터 한 시간씩 3일간 전화통화로 진행했다.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와인과 우리술
김희전씨는 소믈리에다. 그러나 그 직업 때문에 그를 찾은 건 아니다.
김씨는 서양술로 대표되는 와인과 가장 밀접한 직업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우리술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는 ‘부의주(浮蟻酒)’를 빚을까 고민한다. 그렇다. 김씨는 우리술과 서양술을 모두 사랑하는 소믈리에다. 왜 그렇게 됐는지, 그게 몹시 궁금했다.
“관광경영이 전공이었는데, 당시의 저는 술이 좀 센 편이었어요. 그렇게 먹고 마시는 가운데 어느 날 그 어린 나이에 회의가 조금씩 들더라고요. 술을 마시는 게 좋으면서도 뭔가 개운치 않았던 거죠. 그러던 중 술을 이해하고 싶고,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해보니 무척 좋았고요.”
서양술과의 본격적인 조우가 시작된 셈이다. 김씨는 그렇게 술을 알아가게 됐다.
“당시에는 정말 존재조차 모르던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따려고 관련 학원을 다녔어요. 와인 공부를 하는데 저변이 확대되지 않아서 그런지, 배우는 내용에 하나둘 의문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찾아가며 스스로 공부했죠. 이게 지금껏 도움이 많이 돼요.”
김씨의 이력은 화려하다. 1999년 코엑스 인터컨티넨탈에서 소믈리에로 활동하다 2001년 석사 준비로 직장을 잠시 접었다. 석사학위를 받은 때인 2003년부터는 한국관광대학, 한양여대, 동서울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술 강의를 맡았다. 이는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여러 대학에 출강하면서도 한 이탈리아레스토랑에서 직원들 대상의 와인과 와인서빙 교육을 오랜 시간 담당했다. 2006년부터는 박사 과정에 들어갔고, 논문은 현재 ‘겁나게 바쁜’ 업무 탓에 올 하반기로 미뤄놓았다.
그러다 우리술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혹은 운명처럼 찾아들었다.
“2004년인가 2005년인가 우리술을 배우고자 전통주연구소의 문을 두드렸어요. 가양주 기초반부터 시작했죠. 그걸 끝마치면 전문가반으로 가야 하는데, 같이 수강했던 사람들 누구도 가지 않는 거예요. 조바심이 났죠. 전 그때쯤 조금은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전문가반까지 마치면 나에게 대단한 이력이 붙는 것쯤으로요. 어쩜 그걸 필요로 했을 지도 모르죠.”
그는 무척 조급했다. 혼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연습 삼아 재미 삼아 술을 직접 빚어보았다. 망하고 또 망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거쳐 어느 날은 내가 만든 술이 맛있게 느껴졌다. 아니, 정말 맛있었다. 너무 뿌듯해 연구소장에게 자랑까지 했다. “정말 네가 한 거야? 그럭저럭 잘했네.” 이 한마디에 그간의 조바심과 짜증, 외로움이 거짓말 같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한 달 후 다시 마셔보니, 정말 “깰 정도로” 맛있었다. 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와인을 알았고 전통주도 비로소 알게 됐는데, 그쯤 되니 서로에 대해 미처 몰랐던 부분, 놓쳤던 부분까지 알게 된 듯했다.

김씨는 “와인 전문가는 와인이 최고라고 얘기하고, 우리술 전문가 역시 우리술이 최고라고 얘기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도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한다. 그저 길이 다를 뿐이다. 오히려 그런 그들의 열정이 부럽고, 내가 닮아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 깰 정도로 느꼈던 우리술의 매력을 꼭 다른 이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걸 가슴으로 느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전문가반 다음의 강사반으로 넘어왔다. 이것마저 수료하면 전통주연구소의 이름을 달고 어디서든 우리술 강의를 할 수 있다. 그는 작년 9월 곤지암리조트에 입사한 후 지금껏 정신없이 보내고 있어 강사반 수료는 조금 미뤄두고 있다.
“전 조금은 더 유명해지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그때 우리 전통주를 본격적으로 알리고 싶어요. 좋은 우리술이 많잖아요.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알리는 알림이 역할도 하고 싶고요.”
김씨는 귀가 쫑긋해지는 말을 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통주 업계에 있는 사람이 대외적으로 우리 전통주가 좋다고 말하는 건 호소력이 조금 떨어진다고 했다. 유명한 사람이 ‘우리술 정말 좋더라’라고 하는 한마디가 더 호소력 짙다는 것이다.
“전 와인을 지금껏 접해왔고, 그 덕에 제 가치를 어느 정도 올려놨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조금만 더 유명해지면 우리술을 알리는데 꽤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그의 포부가 아주 단단하다. 흔히 하듯 “네 꿈을 꼭 이루길 바라”라는 말은 그에게 필요할 것 같지 않다. 대신 “넌(혹은 당신은) 반드시 할 수 있어. 기대할게”라는 한마디가 김씨에겐 천군만마 같은 힘이 돼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