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부나하벤’ 마스터 블렌더가 알려준 ‘단짠 위스키’의 매력
최연소 여성 마스터 블렌더 줄리엔 페르난데스 訪韓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 ‘부나하벤(Bunnahabhain)’의 마스터 블렌더 줄리앤 페르난데스(Julieann Fernandez)가 한국을 찾았다.
부나하벤을 모른다고? 그럼 증류소 자리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아일라(Islay·아일레이)를 알아야 한다. 스코틀랜드 서남쪽에 자리한 섬이다. 피트(peat·이탄) 위스키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아드백(Ardbeg)’이 그렇고 ‘라가불린(Lagavulin)’이 그러며 ‘라프로익(Laphroaig)’이 그렇다. 흔히 말하는 병원 소독약 냄새, 바로 그 위스키다. 이에 중독된 마니아가 적잖다.
부나하벤 증류소는 아일라섬 최북단에 자리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해풍(海風)이 어마어마할듯하다. 시작은 1881년이다. 올해로 145년째다.
재밌는 건, 부나하벤은 피트 위스키의 상징과도 같은 아일라섬의 터줏대감 중 하나지만, 제품에는 피트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논피트(Non-Peat)’ 스타일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피트향 물씬 풍기는 ‘모이네(Moine)’라는 제품도 생산하긴 하지만 대개가 논피트 위스키다.
부나하벤의 특징을 짧게 설명하면, 피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마가데일(Margadale) 강의 맑은 물을 사용하고, 나무로 된 워시백(washback·거대한 발효통)에서 최소 52시간을 발효하며, 아일라에서 가장 높은 증류기로 위스키 원액을 만든다. 그리고 셰리 와인을 담아둔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시킨다. 한 가지 더. 해풍을 충분히 맞고 자라난 덕분에 짭조름한 맛도 느껴진다.
가장 높은 증류기라는 건, 증류기의 넥(neck·목)이 무척 길다는 표현이다. 그 모습이 백조의 목 같다고 해서 ‘스완넥(swan neck)’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를 통해 좀 더 깨끗하고 정제된 원액을 얻는다.
줄리앤 페르난데스는 스카치위스키 업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스물아홉 나이에 마스터 블렌더 자리에 올랐다. 덕분에 업계 최연소 여성 마스터 블렌더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영국 에버테이(Abertay)대학교에서 법의학을 전공했는데, 부나하벤을 수입하는 캄파리코리아 관계자는 “증거와 데이터를 세밀히 분석하는 법의학적 사고방식이 서로 다른 원액과 캐스크의 특징을 구분하고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블렌딩 작업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나하벤을 비롯해 ‘딘스톤(Deanston)’, ‘토버모리(Tobermory)’, ‘레칙(Ledaig)’ 등 여러 스카치위스키의 블렌딩을 책임지고 있다. 각 증류소의 원액 특성을 바탕으로 캐스크를 선정하고 숙성 상태를 점검하며, 최종 블렌딩과 신제품 개발까지 결정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시음회에서 맛본 부나하벤과 관련해 줄리앤 페르난데스와 몇 가지 얘기를 주고받았다.

- 개인적으로 부나하벤 12년은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짠맛이 좀 강하게 느껴졌다. 아까 얘기한 걸 기억하면 해풍의 영향이 크다고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듯하다.
“해안가의 짠맛, 그러니까 바다의 소금기는 부나하벤 증류소의 위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부나하벤 웨어하우스(오크통 숙성 창고)는 바다 바로 옆에 있다. 위스키들이 해풍을 맞으며 숙성된다. 실제로 바다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12년이 더 짜게 느껴지는 건 셰리 캐스크에 이어 버번 캐스크에서도 숙성시키기 때문에 18년보다 좀 더 짠맛이 강할 수 있다.”
- 아일라의 다른 증류소들이 만든 위스키에서도 그런 짠맛이 느껴지나.
“물론 다른 제품들도 바다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부나하벤 증류소는 아일라의 최북단에 있고, 그 공간도 매우 넓다. 더구나 무척 큰 웨어하우스가 해안가 바로 옆에 있다. 해풍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지리적 특성, 그리고 증류소 크기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 스코틀랜드에서 셰리 캐스크를 사용하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나하벤은 버번 캐스크까지 사용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말한 대로 스코틀랜드에선 대부분 셰리 캐스크를 쓴다. 우리가 버번 캐스크를 함께 사용하는 건 부나하벤이 지닌 셰리의 특성이 버번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매치가 아주 잘 되기 때문이다. 아시아 시장은 약간 달고 부드러운 맛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만큼 부나하벤 12년을 위주로 알리고 있다.”

마스터 클래스에는 부나하벤 4종이 소개됐다. 그에 맞춘 간단한 요리도 선보였다. 푸드 페어링은 스페인 레스토랑 ‘가토스’ 박대혁 총괄 셰프가 맡았다.
테이블에 오른 위스키는 ‘부나하벤 스튜라더(Stiuireadair)’ ‘부나하벤 12년’ ‘부나하벤 18년’ ‘부나하벤 안 쿠안 가르브(An Cuan Garbh) No.1’다. 스튜라더, 12년과 18년은 알코올도수가 46.3도다. 45도나 50도도 아닌 46.3도다. 줄리앤은 이를 두고 “위스키의 아름다운 풍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고, 단백질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알코올도수”라고 설명했다.
부나하벤은 논칠 필터(Non-Chill Filtered) 방식으로 만든다. 냉각 여과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위스키에는 여러 성분이 있다. 숙성과 발효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생긴다. 위스키 온도가 낮아지면 일부 성분이 뭉치면서 뿌옇게 보일 수 있다. 나쁜 건 아니다. 이런 성분들을 필터로 통과시켜 제거하는 방식이 냉각 여과다. 논칠 필터는 비(非)냉각 여과기 때문에 위스키 성분들을 제거하지 않는다. 숙성·발효 과정과 캐스크의 모든 성질을 가능한 한 다 맛보여주려는 의도다. 그래서 줄리앤도 “입안에서 느껴지는 풍미가 훨씬 더 풍요롭다”고 했다.

가장 먼저 스튜라더를 한 모금 마셨다. 부나하벤의 엔트리(entry·입문용) 위스키다. 글라스 안으로 보이는 빛깔은 확실히 천연색이다. 건과일의 단맛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캐러멜과 견과류 느낌도 묻어났다. 마지막에는 바다 내음이 살짝 느껴졌다.
참고로 스튜라더는 ‘키잡이(helmsman·조타수)’라는 뜻의 게일어다. 부나하벤의 상징인 만큼 키잡이 그림이 모든 제품의 라벨에 새겨져 있다.
12년은 부나하벤의 시그니처 위스키다. 셰리 캐스크와 함께 버번 캐스크를 사용한다. 역시나 건과일의 단맛이 느껴졌고, 블랙베리 같은 베리류(類)와 고소한 견과류까지 입안에서 맴돌았다. 개인적으로 바다 향, 소금기가 가장 많이 느껴진 제품이다.
18년은 셰리 캐스크 중에서도 상급인 올로로소(Oloroso)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시킨다. 건과일보다는 캔디 같은 단맛이 느껴졌고, 스파이시 향도 은은하게 흘렀다. 한 모금 마시고 1분쯤 지나자 건포도 향이 코끝으로 흘러나오기도 했다. 앞선 두 제품보다 확실히 도드라지는 단맛에 바다 내음까지 겹쳐지는 게 ‘단짠 단짠’의 매력이 느껴지는 위스키다.
마지막 안 쿠안 가르브는 게일어로 ‘거친 바다’를 뜻한다. 알코올도수는 51.6도. 그 옛날 선원들이 느낀 항해의 즐거움을 담은 컬렉션이다. 복숭아 맛처럼 과일의 성격이 구체화 됐고, 시트러스 향도 강하게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의 과일 풍미가 길게 이어졌다. 이 제품은 10월 한정판으로 출시한다.
부나하벤 증류소의 문이 처음 열린 1881년에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아일라섬 최북단에 자리한 까닭이다. 당시 증류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위해 하나의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다닐 학교라든지 직원들이 머물 숙박 시설까지 하나둘 생겨났다. 그러면서 사람들 간의 좋은 에너지가 위스키에 반영됐다.
좋은 술에는 좋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부나하벤 역시 그렇다. 외딴곳에 모인 좋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까지 좋은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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