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2019년7월22일 월요일

열역학, 난방, 증기, 냉각… 닥치는대로 공부했더니 어느새 最高가 되더라

양조설비 제조업체 브루앤드디스틸시스템 김주수 대표

기사작성 04-02 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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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키트’ 수입·판매로 시작해 양조설비로 이어져
農家 대상으로 한 소규모 양조설비 제조사업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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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0년대 초 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했다. 그 회사는 제조업도 겸했다. 당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공장을 세 곳 지었는데, 회사는 그에게 총괄관리 업무를 맡겼다.


그곳에서 일하던 중 ‘조세범처벌법’을 알게 됐다. 하루에도 블라디보스톡을 오가는 선박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니 자연스럽게 듣게 된 것이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당시에는 주류제조면허 없이 술을 제조해 팔다 걸리면 벌금이 8만원이었어요. 조세범처벌법 8조2항에 관련 조항이 있었죠. 그런데 그 법이 대략 50년 전에 만든 것이 거든요? 그 당시 8만원과 1990년대 초반의 8만원은 다르잖아요. 유명무실한 거죠. 그래서 결국 그 조항이 삭제됐어요. 그때 생각했죠. ‘면허 없이 술을 만들어 팔면 안 되니 아예 만들어 마시도록 하면 좋겠구나!’ 당시만 해도 집에서 막걸리를 만들어 마신다는 걸 생각이나 했겠어요? 대신 맥주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영국 등에서 맥주 키트(kit)를 수입해 판매할 계획을 세웠어요.”


그 생각은 적중했다. 그리곤 승승장구했다. 재미와 맛을 모두 만족시킨 결과다. 그는 국내에 맥주 키트를 수입·판매한 것은 자신이 처음이라고 했다.


신문과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치면서 사업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곧바로 경쟁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금세 싫증나는 데다, 애써 수고하지 않고도 집밖으로 나가면 술 마실 곳 천지니 생각만큼 탄탄대로는 끝없이 펼쳐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파트에는 각종 키트를 쌓아둘 공간이 마땅치 않아 결국 버리게 되고,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것으로는 더 이상 안되겠구나.”


그 당시 약주(藥酒)를 알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양조설비를 배웠다. 무섭게 빠져들었다. 그때가 대략 2000년쯤의 일이다. 당시에는 양조설비 제작업체가 전무했다. 여과기 같은 건 이탈리아에서 수입해 사용했다.


그러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하우스맥주’ 관련 규제완화가 이뤄지면서 양조설비 쪽에도 빛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곧 양조설비들을 수입해서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또 발생했다. 관련 기술이 없으니 애프터서비스가 되지 않았다. 애써 수입해서 파는데 설비가 고장이라도 나면 속수무책이었다. 아무 것도 못해주니 고객 뒤통수만 치는 꼴이었다.


몇 날 며칠 고민 끝에 양조설비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용접사 한 명을 고용해 같이 배워가며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탱크만 만들어선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관련 지식과 용접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부가가치가 높은 전기·기계장치까지 알아야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전기 관련 애프터서비스가 들어오면 내가 해결하는 쪽이 빠르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전기부터 배웠다. 그러다보니 설계도 가능해졌다. 결국 영업이 쉬워졌다.


“내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줘야 맞다고 봐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로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 어쨌든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 이게 필요한 것이더라고요. 시행착오는 적지 않았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고, 그래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어요. 물론, 원하는 만큼 해결해주지 못하면 고객 입장에선 불만이 없을 수 없죠. 그래도 뒤통수는 치지 않는다는 것, 도둑질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전기가 끝은 아니었다. 일하다 보니 히팅(heating·난방), 스팀(steam·증기)도 알아야 했다. 그러려면 열역학(熱力學)을 배워야 했다. 별 수 없으니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이젠 냉각까지 섭렵해야 했다. 끝도 없다. 오랜 시간 그의 직업은 사업가가 아니라 만학도(晩學徒)였다. 공부하면서 돈 쓰고 버는 일을 반복한 셈이다.


세상이 좋아지니 인터넷 카페가 활성화됐다. 한결 편해졌다. 보일러 냉동기술 쪽으로 잘 아는 회원들을 찾아가 하나둘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냉동기술은 한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를 찾아가 수업을 들었다. 짧은 강의는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달 뒤 똑같은 강의가 또 열리길래 창피를 무릅쓰고 찾아가 솔직히 말했다.


“사실 한 번 들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니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 그랬더니 그 강사는 무엇을 모르겠는지 물었다. 다행히 강의에 다시 참석할 수 있게 됐다. 변화도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땐 대충 칠판에 쓰고 넘어가던 내용들,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문제들을 어떻게 알았는지 콕 찝어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비로소 기본을 알게 됐다. 기쁨도 컸다. 그렇게 그는 전문가가 됐다.


시간이 지나자 욕심이 하나 생겼다. 처음 맥주 키트를 수입했던 나라에 내가 만든 양조설비를 내다팔아 보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훌륭한 제품을 가져와 그것을 배우고, 결국 우리가 만들어 되파는 기술이 뛰어난 나라가 아닌가. 나는 그 국민이고.


2006년 양조설비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그간 배운 경험이 적지 않으니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만들어가자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증류기, 당화기, 발효기, 증자기, 제국기 등 주류 관련 설비들에 집중했지만 지금은 잼 만드는 기계 등 그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그는 지금도 양조설비 R&D(연구개발) 비용으로 해마다 수천 만원을 투자한다. 현재 고민 중인 것도 있다. 그 고민은 그의 계획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농가(農家)들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설비 제조사업을 계획 중이다. 쌀이나 사과 등 잉여농산물을 가공해서 보존기간을 늘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농가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남아도는 쌀이나 사과로 만들 수 있고, 그러면서 보존기간도 긴 제품이 뭐가 있겠어요. 대표적인 것이 술이에요. 그중에서도 보존기간이 가장 긴 게 증류주죠. 그 다음이 잼이고요. 결국 보존기간을 늘려주는 게 답이에요. 쌀농가는 증류식소주, 과실농가는 과실 증류주 등을 만들 수 있는 소규모 설비를 갖추는 것이 결국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죠.”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원적로89번길 80 ☎ 031·634·3235 | bluebrew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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